본문 바로가기

✒️골방인디출판/예수 컨설팅-포스트꼰대니즘의 전도10

[예수 컨설팅] 제6장-그노티 세아우톤 ‘그노티 세아우톤(γνῶθι σεαυτόν)’은 그리스 델포이 아폴론 신전의 앞마당에 새겨져 있던 문구로, ‘너 자신을 알라’라는 뜻이다. 너희가 너 자신을 알게 되면 너희는 알려질 것이요, 살아계신 아버지의 자녀가 자신임을 깨닫게 되리라. 그러나 자신을 모른다면 빈곤 가운데 사는 것이며, 빈곤 그 자체 이니라. -예수(도마복음 3절) 모든 것을 알되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니라. -예수(도마복음 67절) 끊임없이 앎을 축적하지만 공허하다.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은 빠르게 변화한다. 지식, 정보, 트렌드, 계절, 정치환경, 경제환경, 사회문화적 환경, 기술적 환경……그 어느 것도 고정된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변화한다. 어느 시점의 세상이 진짜 세상인가? 강물이 흘러가 버리듯 .. 2020. 7. 10.
[예수 컨설팅] 제5장-호모 데우스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예수(요한복음 8:55) 믿음의 종류는 (1) 작은 믿음, (2) 큰 믿음, 두 가지가 있다. (1) ‘작은 믿음’은 머리로 하는 믿음이다. 머리는 인위적으로 계산하고 증명해야 한다. 이유를 따져야 한다. 작은 믿음의 반작용은, 의심이다. 작은 믿음은, 의심을 억누르기 위해서 강해져야 한다. 강해지고 굳어지는 것은, 죽음의 무리다. 강해지고 굳어진 작은 믿음은, 의식 수준을 죽음의 길로 내몬다. 작은 믿음의 귀결은, 맹종과 우상숭배다. 군중-떼를 주체로 하여, 타력에 의지하는 기복 신앙이, 작은 믿음이다. (2) ‘큰 믿음’은 심장으로 하는 믿음이다. .. 2020. 7. 7.
[예수 컨설팅] 제4장-우상의 황혼 군중-떼가 가질 수 있는 논리는 (1) 흑백 논리와 (2) 진영 논리뿐이다. 흑백 논리의 귀결은 ‘혐오’다. 우리 편이 있으면 반대편이 있다. 정확히는, 우리 편이라는 군중-떼를 모으려면, 반대편이 필요하다. 군중-떼 안의 군중들이, 서로를 필요로 하듯, 양 극단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우리 편과 반대편을 분리하는 인위적인 장벽이 필요해진다. 그래서 흑백 논리는 ‘혐오’라는 장벽을 필요로 한다. 흑백 논리는 혐오를 양산한다. 진영 논리의 귀결은 ‘내로남불’이다. 링 위에서의 결투는 같은 체급끼리 이루어진다. 비슷한 것들끼리 싸운다는 뜻이다. 대립하는 양 진영은 서로 닮은 구석이 있다. 닮은 것들끼리 서로를 비판한다. 닮은 것을 비판하다 보니 자가당착의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진영 논리는 ‘내.. 2020. 6. 29.
[예수 컨설팅] 제3장-집단적 나르시시즘 노예들의, 주인에 대한 질투심을,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고 한다. ‘집단적 나르시시즘’은 ‘르상티망’을 뿌리로 하여 자라난 열매다. ‘나르시시즘’은, 그리스 신화에서,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을 사랑하며 그리워하다가, 물에 빠져 죽어 수선화가 된, ‘나르키소스’라는 미소년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혼자서는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 만큼 용감하지 못한 자들이, 서로에게 도피하여 용해되어버린, ‘군중-떼’ 차원에서의 나르시시즘, 이것이 ‘집단적 나르시시즘’이다. 예수의 삶은 ‘유대인들의 집단적 나르시시즘’이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구약적 세계관'은, ‘유대인들의 집단적 나르시시즘’의 총체다. 구약 속의 여호와(야훼)는, 유대인들의 집단적 에고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인격신’이다. .. 2020. 6.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