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떼가 가질 수 있는 논리는 (1) 흑백 논리와 (2) 진영 논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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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논리의 귀결은 ‘혐오’다. 우리 편이 있으면 반대편이 있다. 정확히는, 우리 편이라는 군중-떼를 모으려면, 반대편이 필요하다. 군중-떼 안의 군중들이, 서로를 필요로 하듯, 양 극단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우리 편과 반대편을 분리하는 인위적인 장벽이 필요해진다. 그래서 흑백 논리는 ‘혐오’라는 장벽을 필요로 한다. 흑백 논리는 혐오를 양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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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 논리의 귀결은 ‘내로남불’이다. 링 위에서의 결투는 같은 체급끼리 이루어진다. 비슷한 것들끼리 싸운다는 뜻이다. 대립하는 양 진영은 서로 닮은 구석이 있다. 닮은 것들끼리 서로를 비판한다. 닮은 것을 비판하다 보니 자가당착의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진영 논리는 ‘내로남불’을 양산한다.
선동 분열 폭력 젠더 이슈
여야 나눠 남녀 서로 갈굼
탈출하고파 이 불바다를
구명조끼는 유튜브로
<다이나믹 듀오-맵고짜고단거>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위선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예수(마태복음 7:1~5)
군중-떼의 논리는 무(無) 논리다. 스스로 생각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앵무새 같이 우리 편의 논리를 중언부언, 횡설수설할 뿐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I think therefore I am)
<데카르트-방법서설>
‘스스로 생각할 수 없음’은, ‘스스로 존재하지 못함’을 뜻한다. 존재가 부재한 자리에, 우상이 들어선다.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는 자들은,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우상을 세운다. 우상을 세울 수밖에 없는 군중-떼의 귀결은, ‘빠’가-됨이다.
아이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요한1서 5:21>
‘빠’가-된 자들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자들이다. 그들은 자기 위에 우상을 세우고 납작 엎드린다. 납작 엎드려, 아무것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기들이 세운 우상마저도 자세히 보려 하지 않는다. 관찰하지 않는다. 그저 박제된 이미지만을 떠받들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형식에만 집착하고, 본질에는 다가가지 못한다.
특정 신, 종교, 교리, 이념, 사상, 철학, 국가, 민족, 정당, 인물, 회사, 돈, 지역, 전통, 문화…… 등등을 자기 위에 세워 우상화 한 뒤, 그것을 ‘숭배’ 하는 것이 ‘빠’가-된 자들의 공통된 행태이다.
(‘우상숭배’라는 외피의 본질은, ‘노예 정신’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임제 선사
우상숭배는 강한 확신을 가지는 것이다. 단단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사람이 태어날 때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으면
단단하고 강해진다.
온갖 것,
풀과 나무,
살아 있으면
부드럽고 연하지만
죽으면
말라 뻣뻣해진다.
그러므로
단단하고 강한 사람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약한 사람은
생명의 무리다.
-노자(도덕경 76장)
강한 확신과 정답을 가지는 것은, 늙어가고 죽어가는 것의 의식 상태다. 호기심과 질문을 가지는 것은, 생명이 넘치는 아이의 의식 상태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
-노자(도덕경 36장)
아이로 태어나 – 늙으면서 - 죽게 되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아이’와 ‘늙은이’의 양 극단이, 비율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인간은, (1)‘애-늙은이’가 되거나, (2)‘늙은-아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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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정의하는 ‘애-늙은이’는, ‘유치한-꼰대’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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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정의하는 ‘늙은-아이’는, ‘성숙한-아이’를 의미한다.
‘애-늙은이’는 ‘확신과 정답’을 가진다. 그러니 자꾸 가르치려 든다. 정답과 오답의 이분법이 선명하니, 흑백논리로 세상을 본다. 진영을 가른다. 더 보고 들으려 하지 않는다. 스스로 생각을 못한다. 스스로 생각을 못하니, 질문하지도 못하고, 질문받지도 못한다. 앵무새처럼 우리 편의 논리를 중언부언, 횡설수설한다. 겉만 보고 판단하고, 겉치레에만 집착한다. 우상을 세운다. 죽음의 무리다.
‘늙은-아이’는 ‘호기심과 질문’을 가진다. ‘호기심과 질문’이 있다는 것은, ‘편견과 고정관념’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기심과 질문이 있으니, 자세히 본다. 관찰력이 있다. 본질을 꿰뚫는다. 호기심과 질문이 있으니, 사고가 유연하다. 스스로 생각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자는, 우상이 필요 없다. 우상이 필요 없는 자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다. ‘나는 나(I am who I am)’로 산다. 생명의 무리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나는 나)이니라.”
God said to Moses,
“I am who I AM”
<출애굽기 3:14>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강하게 굳음)’ 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예수(마태복음 13:15)
성인에게는
고정된 마음(=완악한 마음)이 없다.
성인은 세상 사람들을 모두
아이 상태로 회복시켜 준다.
-노자(도덕경 49장)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마태복음 18:3)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예수(요한복음 1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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