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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인디출판/예수 컨설팅-포스트꼰대니즘의 전도

[예수 컨설팅] 제9장-구약과 신약

by 마음의제국 2020. 8. 3.

Leonardo Da Vinci-Salvator Mundi

엄마부터 사장까지
모든 권위자들은 
밀레니얼에게
최고의 스펙을 축적하라 말했고

밀레니얼들은 그렇게 했다
그러나 시장은
약속한 거래를 끝내 지키지 않았다
.
<뉴욕 타임즈>
The ebs space_504회_장기하와 얼굴들 - 아무것도 없잖어

 ‘구시대의 약속’이 있다. 이것을 ‘구약’이라 한다. 구약의 내용은 이것이다. 

축적하라그리하면 만족이 있을 것이다.”

 

 구약은 인간의 생각이다. 지금껏 인간은 구약적인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이 생각은 마음에서 일어난다. 마음의 작용이, ‘생각이다

 

구시대의 인간은, 마음을, 자신과 동일시한다. 마음을, 개별적인 자아, 즉 에고라고 한다. 구시대의 인간은 파편화된 에고를 자기 자신으로 착각한다. 소외(alienation)’는 파편화된 에고를, 자기 자신으로 착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소외된 자는 말 그대로, 생각에 ‘빠져서’ 산다. 생각이라는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이것을 ‘번뇌 망상’이라고 한다. 

 

 번뇌 망상의 귀결은 불안이다. 생각에 ‘빠져서’ 사는 것은, 태풍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다. 이 태풍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잠시도 내면이 안정 되지를 못하고 흔들린다. 흔들림 속에서 혼탁이 발생한다. 혼탁에 의해, 원래 있던 존재의 청정한 밝음을 잃어버린다. 이를 무명(無明)’이라고 한다.

 

 불안한 자들은, 부단하게 움직인다. 언제나 불안한 ‘에고’는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할 수 없다. 에고는 무상한 ‘과거’와 ‘미래’만을 온 힘을 다해 꽉 붙잡는다. 과거와 미래를 번갈아 가며, 시계추처럼 흔들린다. 흔들리니, 혼탁 해진다. 

 

 에고는 과거로 부단하게 움직인다. 과거의 ‘나 때’와, 과거의 ‘감정’을 온 힘을 다해 꽉 붙잡는다. 소가 되새김질을 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과거를 되새김질하며, 지금 주어진 현재는 완전하게 무시한다. 어둡고, 무겁다.

 

 에고는 미래로 부단하게 움직인다. 미래의 ‘계획’과, 미래의 ‘꿈’을 온 힘을 다해 꽉 붙잡는다. 비둘기가 정신없이 머리를 앞뒤로 흔드는 것처럼, 끊임없이 미래를 걱정하며, 지금 주어진 현재는 완전하게 무시한다. 어둡고, 무겁다.  

 

 과거, 미래로 시계추처럼 흔들리면어둡고 무거워진다.

김윤아 (Kim Yuna) - 꿈 M/V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

-예수(누가복음 5:22)


‘생각에 관한 생각’을 해보자. 구체적으로는, 무의식적인 생각에 관해, 의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마음은, 쉴 새 없이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 생각은, 사실 ‘개인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집단’에 의해 강요된 생각이다. 마음은 집단적으로 하는 생각’, ‘원래 그러니까 그런 생각’, ‘남들이 다 하니까 당연하게 하는 생각밖에 하지 못한다. 이것을 무의식적인 생각이라고 한다. ‘에고’는 무의식적인 생각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에고는 지금 여기에 존재할 수 없다. 에고는 ‘현재’에 머무르지 못하고 과거미래로 흔들리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에고를 자기와 동일시하면, ‘지금 여기’에 대해서는 공허감과 우울감 밖에 느끼지를 못한다.

 

 에고를 자기와 동일시하면,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도, 내면에서 찾지 못하고, 외부에서 찾게 된다. 에고는, ‘지금 여기’에 머무르지 못하여, 내면의 지금 여기’ 자리는비어있다고 착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에고가 외부를 통해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방법이 비교다. 에고는 끊임없는 비교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끊임없는 비교의 귀결은, 열등감 또는 우월감이다. 에고는 열등감과 우월감의 양극단을, 시계추처럼 왕복하며, 흔들린다. 열등감으로우월감으로시계추처럼 흔들리면내면이 어둡고 무거워진다.

 

 내면이 어둡고 무거워진 에고가, 생각할 수 있는 시점은, ‘과거’와 ‘미래’ 뿐이다. ‘생각하는 에고’에게 ‘지금 이 순간’은 없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은, ‘느끼고, 감탄하는 대상’이지, ‘생각하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에고는 느끼고 감탄할 수 없다. 에고는 ‘무의식적인 생각’에 중독되어, 이것을 멈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각은 너무 많이 하고 
느끼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찰리 채플린
될 수 있으면 많이 감탄해라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감탄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
-빈센트 반 고흐

 

 에고가 하는 무의식적인 생각은, ‘지금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내용이 없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서, 나중 저기 또는 예전 거기로 끊임없이 달려 나간다. 생각은, 흐르는 시간 속에서, 시계추처럼 흔들리며멈출 줄을 모른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간다’는 관념은, 완전한 착각이다. 시간이 ‘과거, 현재, 미래’로 흘러간다는 것은, 작디작은 에고가 느끼는 착시현상이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고를 포함한무상한 것들이 흘러갈 뿐이다. 시간은, ‘지금 이 순간’이라는 형태로, 영원히 머물러 있다. 

 

 에고가 중심에 있고,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지금 이 순간이 중심에 있고, ‘무상한’ ‘에고가 흐르는 것이다. 전환 시대는, 존재와 시간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요구한다. 무상한 것들이 강물과 같이 흘러 지나가는 것을, 시간이 흐르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면, 무상한 것들과 하나가 되어 휩쓸려가게 된다. 이것을 멸망이라고 한다.  

 

 존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으며, 미래는 절대로 오지 않는다. 과거와 미래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것은 영원한 현재’ 이다. ‘과거와 미래’는 인간의 마음이 가상으로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 진실로 우주에 존재하는 것은, 무한하게 펼쳐진 ‘지금 이 순간’ 뿐이다. ‘지금 이 순간’은 ‘찰나(刹那)’이면서, 동시에 ‘영겁(永劫)’인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내일’이 온 적이 있는가? 언제나 ‘오늘’이다. 인간이 편의에 의해, 관념상의 숫자로 개념화한 것일 뿐, 우주의 실상은 언제나, 영원히, ‘지금 이 순간’으로 머물러 있다. 시계추의 흔들림이 멈추면, 시간이 멈춘다.

살바도르 달리-기억의 지속


너희들은 

이 순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느니라.

-예수(도마복음 91절)


벗이여그대 어딜 가서 나를 찾는가
눈을 뜨고 보라
나는 지금 그대 옆에 있나니
나는 사원에도 없고
모스크에도 없고
히말라야 산정에도 없고
카바 신전에도 없고……
저 거룩한 의식 속에도
요가의 수련 속에도
출가 수도의 길에도
나는 없다
그대가 진정한 구도자라면 
지금 여기에서 나를 보리라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진정으로 찾는 이여
찾아 헤매는 이여
신은 모든 존재의 호흡 속에 있다
그 호흡 속의 호흡이다.
-까비르
msftz(미스피츠) '2080' Official MV

 ‘지금 이 순간이 중심에 있고, 이것이 영원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생명이다. 영원한 ‘지금 이 순간’을 중심으로, 무상한 것들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곧 지금 이 순간이며, 지금 이 순간이 곧 이다. 이 영원한 것과 하나 되어 머무르면서, 만물이 끊임없이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생명이다.  

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살 줄 알아야 합니다

매 순간의 현재를
살고 있지 않다면 
그것이 바로 불행입니다.
-법정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예수(마태복음 7:13~14)


삶으로 이끄는 좁은 문을 찾으세요
그것은 지금 이 순간입니다
당신의 삶을 이 순간으로 좁히세요
삶의 상황에는
온갖 문제들이 가득할 겁니다

누구에게나 삶의 상황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 순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세요

내일이나 10분 후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나요?
-에크하르트 톨레
이 용기는 죽음조차도 살해한다. 
왜냐하면 용기는
“그것이 이었던가? 
좋다! 그러면 다시 한번!” 
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말에는
승리의 음악이 힘차게 울려 퍼진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니체
(ENG/JPN) [월요병예방] 아이유의 이 지금, 황홀한 나의 오늘날 l #피크닉라이브소풍

 영원한 지금 이 순간이라는, 존재하는 것에 안주하지 못하기에, ‘마음’은, 과거-미래라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쫓으며, 자기가 만들어낸 쳇바퀴 속에서, 정신없이 달린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존재할 것이냐

존재하지 않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햄릿>

 

 ‘마음이 나라는 착각과, 시간이 흘러간다’는 착각이 결합되면, 삶은 완전한 고통의 바다(지옥)가 된다. 고통의 바닷속에서 마음은, 후회(과거), 불안(현재), 갈애(미래)를 내려놓지 못하고, 끊임없이 ‘저글링’한다. 마음은 정신없이 쳇바퀴 달리고, 저글링 하면서, 혼탁해진다. 내면이 어둡고, 무거워진다. 참을 수밖에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견디며, 부단히 노력하지만, 눈 앞에 펼쳐지는 상황은, 항상 어렵고, 그 어려운 상황을 넘기는 순간, 또 어려운 상황이 와서, 쉴 수가 없다. 인간의 무지(無知)한 마음대로’ 살면사는 게 너무 힘들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예수(마태복음 11:28~30)


 마음대로 사는 것은,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려 사는 것과 같다. 이것을 ‘전도 몽상’이라고 한다. 마음은 내가 아니다. 마음을 부정하라는 것이 아니다. 거꾸로 서있는 것을, 똑바로 서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마음은 도구다. 마차로 비유하자면, 마음은 고삐에 묶여 있는 말이다. 주인은 마차 안에 앉아 말고삐를 쥐어야 한다. 그 주인이 ‘참나’다. 존재가 안주할 자리는, 고삐에 묶인 말이 아니라, 마차 안의 주인, ‘참나’ 자리다. 주인 자리에 앉아서 고삐를 쥐어야 한다.                                           

 

 멸망의 길로 열심히 달려가는 -늙은이(유치한-꼰대)들은, 구약(축적하라. 그리하면 만족이 있을 것이다.)이라는 독약을 아이들에게 먹이면서, 그것을 진리라고 가르친다. 이에 따르면, 미래의 만족을 위해, 현재는 저당 잡힌다. 저당 잡힌 현재는 항상 ‘불안’하고, ‘공허’해진다. 이 순간에 존재하지 못해서 불안하기 때문에, ‘구약’을 믿고, ‘표준화 패러다임’을 따르며, 이 땅에 ‘피라미드 위계’라는 바벨탑을 세운다. 

 

 ‘참나’라는 ‘신성’이 거세되면, 인간은 동물 중의 가장 영악한 동물, 기계 중의 가장 천박한 기계가 된다. 인간이 내면을 천착하지 아니하면천박한 물질그 자체로 전락한다.

 

 ‘물질’ 그 자체로 전락한 애늙은이들은, 아이들에게 “넌 커서 무엇이 될래?”라고 질문한다. 그런데, 이것이, 사람한테 할 질문인가? 무엇(What)’이라는 것은, 사물을 대상으로 하는 질문이지, 사람한테 할 질문은 아니다. 그런 질문을 던지는, 그들이야 말로 무엇인가? ‘참나(I am)’라는 신성이 거세된 기계인간들이다. 

 

 사람은 넌 커서 무엇이 될래?”라는 질문을 품고 살면 안 된다. 이 질문은, 마치 좀비가, 살아있는 사람을 물어뜯어 감염시키는 것처럼, 기계인간들이 아이들을 감염시키는 매개체다. 그들은 이 질문에 아이들을 빠지게 만들어, 사람을 ‘사물화’, ‘대상화’, ‘수단화’한다. 기계인간들이 이런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을 하면, 나는 나지(I am Who I am), 그 무엇도 아니다!”라고 답해야 한다. 살아있는 사람이 품고 살아야 할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이다. 

 

너 자신이 되어라.
-니체

 

 구시대의 애늙은이들은 생각하는 기계다. 끊임없이 마음대로 생각한다. 구체적으로는 무의식적인 생각을, 너무 많이 한다. 얕고, 약고, 평범하게 악한, 집단의 무의식적인 생각을 끊임없이 한다. 그냥 원래 그러니까 그런, ‘집단의 무의식적인 생각’을, 정답으로 받아들인다. 매 순간 변하는 나의 기분이 아닌, 고정되어 있는 세상의 기준만으로 살아가니, 맹목적이다. 자기 성찰이 없다. 쉽게 답을 얻고, 쉽게 답을 내린다. 이분법으로 세상을 가른다. 답을 주는 대상에 대해서는 빠-가 되고, 그 답과 다른 대상에 대해서는 까-가 된다. 우상숭배와 마녀사냥의 양극단을, 시계추처럼 왕복하며 흔들린다. 

 

생각하는 기계인간들은, 자기들과 다른 생각, 즉, 의식적인 생각을 하는 ‘개인’을 증오한다. 이분법으로 프로그래밍 된 이 기계인간들은, 인위적인 이분법의 잣대로 사람을 계속 판단한다. 이래라, 저래라, 일해라, 절해라, 요구가 많다.  

 

Only God Can Judge Me 
오직 신만이 날 판단할 수 있다
-2Pac

 

젊은이를 타락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을
존경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
-니체

 

군자는
화합하되 
똑같지 않으며
소인은
똑같으면서도 
화합하지는 못한다.
-공자

 

 구시대의 애늙은이들은, 주인을 도구의 자리로 보내고, 도구를 주인의 자리에 앉힌다. 주인의 자리에서 말고삐를 쥐는 법은 가르쳐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기들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아이들에게, 고삐 묶인 말이 되어 열심히 ‘노력’ 해야 한다며, 윽박지르고, 채찍질을 가한다. 아파서 비명을 지르면,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한다. 이것을 삶에 대한 노략이라고 한다. 

 

 삶의 빈자리가 채찍질로 채워지면, 삶에 대한 사디스트, 또는 마조히스트, 또는 그 반반의 아수라 백작이 된다. 넋 놓고 있다가 삶을 노략질당하게 되면, 그 아이 역시, 애늙은이가 된다. 

 

 신성이 거세되어 야성만 남은 애늙은이들은, 내면을 천착하지 않기 때문에,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미는 ‘위선자’가 된다. 영혼 없이, 겉치레(외식外飾)’에만 몰두하여, 사물화 된다. 이들이 우상 숭배하는 유일신은 물신(物神)’이다. 이들은 물신숭배라는 사이비(似而非종교의 광신도가 된다.

 

 구약시대의 얕고, 약고, 평범하게 악한, 이 기계 인간들을, 말종 인간(The Last Man)’이라고 한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늑대라.

-예수(마태복음 7:15)


화 있을진저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말종 인간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예수(마태복음 23:13)


독사 새끼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겠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예수(마태복음 12:34)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예수(마태복음 15:16~18)


눈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내면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예수(마태복음 23:26)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예수(누가복음 12:51)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을 주러 왔노라.

-예수(마태복음 10:34)


세상 사람들은 내가 이 세상에

화평을 주기 위하여 온 것으로 알고 있으나

나는 세상에 

불과 검과 전쟁이라는 분쟁을 주러 온 줄  

모르고 있느니라.

-예수(도마복음 16절)


내가 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예수(누가복음 12:49)


불타버려우린 쓰레기인걸!
+
심사의 세대  
닫힌 네겐  
서툰 새 빛조차
두렵겠지만 
 
난 좋기만 해  
더 기대가되 
<서태지-오렌지울트라맨이야>
Seo Tai-ji - Orange + Ultramania, 서태지 - 오렌지 + 울트라맨이야, Music Camp 20001014

 예수는 인간 내면의 혁명, 즉, 의식 혁명을 일으켰다. 마음은 생각하지만, 영혼은 의식한다. 마음대로 사는 애늙은이들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하지만, 영혼으로 사는 아이들은, 나는 의식한다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한다. 

 

 자유-하려면, 자기 내면의 생각하는 자리를, 한 발짝만 떨어져서, 가만히 가만히, 지켜보아야 한다.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생각은 마음껏 하되, 생각하는 자리에서 휩쓸리고 있지 말고, 마음 놓고, 한 발짝만 더 안으로 들어가서, 생각이라는 태풍의 소용돌이를, 지켜보는 자리에 머물러 보라는 것이다. 거기가 본래 존재의 자리다. 이 자리를 태풍의 눈이라고 한다. 그 텅 빈자리에, 이 있다.   

 

 ‘태풍의 눈’ 자리에 머무르면서, 그저 자기의 생각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잠자고 있던, 의식이 깨어난다. 내면의 의식하는, 눈이 떠진다. 이 눈은, 존재의 판옵티콘 한가운데서, 영원히 지켜보고 있는 눈이다. 존재 내면의 중심에 서서, 모든 것을 침묵하며 보고 있는, 성령(불)의 눈이다.


그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너희 눈이 성하면

온몸이 빛으로 채워질 것이요

너희 눈이 나쁘면

온몸이 어둠으로 채워질 것이니

그러므로 

너희 안에 있는 그 빛이 어두우면 

어둠이 얼마나 엄청나겠느냐!

-예수(마태복음 6:22~23)


Kid Ash X G2 - Intro (Official Video)


나는 이 세상에 을 던졌노라

보라이것이 타오를 때까지

내가 지키고 있노라.

-예수(도마복음 10절)


TAEYEON 태연 '불티 (Spark)' MV

 원심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돌이켜서, 구심력으로 되돌아가면(when mind’s light returns , 회광반조回光返照), 잠자고 있던 의식이 깨어나고, 참 나의 자리에 안주하게 된다. 텅 비어 있는 그곳에, 빛이 있다.    

 

 빛은, ‘지금 여기’에 영원히 머물러 있다. 그 빛에 안주하는 느낌은, 흔들리지 않는 평안함’이다. 그 빛과 다시 하나가 되면, 머물 수 있는 존재의 가벼움’을 누릴 수 있다.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예수(마가복음 14:34)


 ‘사랑은 머무름’이다. 예수는 인간을, 지금 이 순간, 참나의 현존에 머물 수 있도록, 전도 몽상에서 깨운다. 내면에 뜨거운 을 지른다. 내면의 을 뜨게 한다.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다. 이것이 예수의 의식 혁명이다. 

 

 ‘혁명(Revolution)’의 어원은, ‘한 번의 회전’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revolutio’이다. 별이 궤도를 돌아,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혁명의 진정한 의미는, 외부의 어떤 목표 지점으로, 직선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 바퀴 돌아서, 근원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되돌아감이 도의 움직임이다.
-노자

그대들이 끝을 알려고 하는데

그러면

시작은 발견하였는가

왜냐하면 시작이 있는 곳에 

끝이 있기 때문이니라

시작에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할 사람은

복이 있나니

그는 끝을 알게 될 것이며

죽음을 경험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도마복음 18절)


사랑 그 너머에
되살아난 천사의 눈이  
너와 나를 영원히 지켜보고 있다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 세상에서
너는밤이고 바다이며
구름들 뒤에 숨겨진 빛이고
끝이면서 시작이다
우리가 속박의 굴레를 벗어나는
길을 찾는 데 있어서

경쟁그 따위 것은 없다
사랑만이 우리의 유일한 사명임을
상기
하라!
이것은 영혼의 여정이다.
<Daft Punk-Beyond>
Daft Punk - Beyond (Official Audio)
보이는가?  
최악의 상황은 끝났다.  
내 머릿속의 괴물들은
사랑을 두려워한다
.  
추락하는 자들이여들으라!  
당신들의 운명을 바꾸는데
절대 늦은 것이 아니다
그러니 저들이
당신들의 빛을 훔쳐가게 두지 마라
!  
저들이 당신들을 멈추게
가만두지 마라

빛은 저기 반대편에 있다
그리고 모든 빗방울들이 
당신들 뒤로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오늘 밤 우리는 살아서 나간다
이게 혁명이다.
<Diplo - Revolution (feat. Faustix & Imanos and Kai)>
Diplo - Revolution (feat. Faustix & Imanos and Kai) [LYRIC VIDEO][Official Full Stream]

 지금 이 순간에 머물러, 빛과 ‘다시’ 하나 되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환각 상태가 아니다. 고통의 바다에 빠져서 사는 지옥의 모습이, 결코 새롭지 않듯, 천국의 모습도, 결코 새롭지 않다.

 

 “축적하라, 그리하면 만족이 있을 것이다.”라는 구약이 채워지기 전 초심(初心) 상태, 본래의 아이 상태, 구체적으로는, 아이의 내면’ 상태(동심童心)가 천국이다. 아이의 내면은 밝고, 가볍다. 순수하고, 소박하다. 아이에게 세상은 온통 누리고, 느끼고, 뛰놀고, 머무는 곳이다. 

 

 아이는 “늘 새로워, 짜릿해!”라고 말한다. 아이의 내면 상태가 느꼈던 세상이, 얼마나 선명하고, 생생하고, 싱싱했는지 떠올려보라. ‘나때’가 좋았던 것이 아니라(모든 세대가 ‘나때’를 말한다), 아이의 내면 상태를 유지할 줄 알던, 그 ‘참나의 순간’이 좋은 것이다. 이 내면 상태로 되돌아가려면, ‘채움’이 아닌, 비움’(허심, 虛心)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여기 있으면서, 저기 있는 것을 생각하는 마음을 놓아 버리고, 누리는 것이, 아이의 내면 상태로 되돌아감이다. 

 

도를 체득한 사람은
채워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채워지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멸망하지 않고 영원히 새로워진다.
-노자

 

그 남성성을 알고 그 여성성을 지키면
천하의 계곡이 된다
천하의 계곡이 되면
언제나 덕이 떠나질 않아

갓난아이의 단계로 되돌아간다.
-노자

 

인간이 자신의 정신력을 강화할 때  
비로소 세계는
다시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아름답게 드러나는 세계에서 
매 순간 충만한 기쁨을 느끼면서
경쾌하게 사는 것

그 순간의 충만함을
느끼면서 사는 것이 바로 
아이의 정신으로 사는 것이다.
-니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마태복음 18:3)


Seotaiji - 태지의 화 - 10. 아이들의 눈으로 [Live]


아빠의 왕국은마치,  

음식이 가득 담긴 항아리를 이고 가는

한 여자와 같으니

먼 길을 걸어 집으로 가는 동안 

항아리 손잡이가 깨져  

음식이 그녀가 걸어온 길 위에

다 쏟아져 버렸느니라

그 여자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였노라

그 여자가 집에 도착하여 

항아리를 내려놓고 나서야 

비로소 그 항아리가 

텅 비어 있음

알게 되느니라.

-예수(도마복음 97절)


너희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은 이미 왔으나

너희들이 단지 알아보지 못할 뿐이니라.

-예수(도마복음 51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예수(누가복음 17:21)


 신시대의 약속이 있다. 이것을 신약이라 한다. 신약의 내용은 이것이다.

비워라그 즉시 평안하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요한복음 14:27)


 구시대의 말종 인간은 무상한 ‘몸과 마음’을 자신과 동일시한다. 구시대의 말종 인간은 ‘구약’스러운, ‘똑같은’, ‘무의식적인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완전히 물질화(기계화)된 머리로, 이해득실 같은, 피상적인 생각만 하며 살아왔다. 정확하게는, 의식이 없기 때문에, ‘생각의 노예’로 전락되어 살아왔다. ‘집단의 생각’에 묶여 꼭두각시처럼 살면서도, 그것이 노예상태임을 자각하지 못한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미혹되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공자

 

 신약은 다른 것을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 신시대의 인간은 의식적인 생각을 한다. 신시대의 인간은, 불멸하는 근원인, 영혼을 자신과 동일시한다. 영혼의 작용이 의식이다. 신시대의 인간은 내면 가장 깊은 곳, 주인의 자리에 머무르면서, 의식의 빛을 밝혀, 생각을 도구로 사용한다. 마음대로, 피상적인 생각에 휩싸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내면의 가장 깊은 근원으로 향하게 하여, 그 안에서, 그 빛을 통해, 통찰(in+sight:안에서 보다)’한다. 이러한 근본적이고 철저한(radical)’ 생각을, 의식적인 생각이라고 하고, 그 결과물을, 아이디어(idea)’라고 한다. 모든 아이디어는, 근원인 이데아(idea)’에서 나온다. 이데아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세상을 바꾸는 (power)이 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하고
,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로마서 8:5~6>

사탄아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예수(마가복음 8:33)


[스티브 잡스] ‘다른 것’을 생각하라(Think ‘different’) (한영 자막)

 구약 시대에는 오직 ‘창조적 소수’만이 ‘의식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으나, 신약 시대에는 인터-넷(Inter-net)’을 통해, 초연결된 개인들이, ‘의식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신약 시대는, 창조적 다수의 시대다. 

 

 신시대의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사는 게 개 같은 느낌’, ‘뭔가 이건 아닌데’ 하는 느낌적인 느낌(찜찜한 기분), 즉, 집단적 현자 타임’은, 신시대에 조응하는 신약이 아니라, 구질구질한 구약을 붙들고 있는 것에서 기인한다. 전환 시대는 약속의 전환을 요구한다. 

Yoshitomo Nara- I think, therefore I am…a dog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예수(마가복음 2:22)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로운 약속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예수(누가복음 22:20)



구시대의 약속(구약)은 이것이다. 

: “축적하라. 그리하면 만족이 있을 것이다.”

 

신시대의 약속(신약)은 이것이다.

: “비워라. 그 즉시 평안하다.”

이것을 
새로운 약속이라 말씀하셨으매
그 첫 번째 것(구약)
더 이상 쓸모가 없는 것이니

한물간 낡아빠진 것은
곧 사라져 가는 것이니라.
<히브리서 8:13>

구약은 꽉 채우기 위해 부단히 ‘현재’를 버리고, '내일로' 전진하라고 한다.

 

신약은 지금 여기에 텅 비어, 깨어있는 상태로 머물면서, 현재(present)에, 참석(present)하여, 선물(present)을 받으라고 한다. 

 오직 현재만이 실재적인 것이며
그 밖의 모든 것은 가상적인 것이다.
<쇼펜하우어-인생론>

구약은 결과론이다. 인생을 결과론적으로 사는 것의 결과는, ‘죽음’이다. 구약에 따르면, ‘지금 이 순간’에 대한 ‘불감증’에 시달리다가, 죽는다.

 

신약은 과정론이다. ‘삶’ 자체가 과정이다. 인생을 과정론적으로 사는 것, 즉 삶의 매 순간에 집중하는 것의 결과는, ‘매 순간의 감사’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게 되면, 삶의 어느 것 하나,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현재의(present) 모든 것이 선물(present)이며, 기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매 순간을 감사하게 된다.

존재적 실존 양식’은  
오로지 지금 여기에만 있다
반면, ‘소유적 실존 양식’은 
'과거미래라는 시간 안에 있다.
<에리히 프롬-소유냐 존재냐>

구약은 ‘축적의 시간’을 이야기한다. 행복은 언제나 ‘나중 저기’에 있다고 한다. 나중 저기에 있는 행복에 ‘도달’ 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라’고 한다. 그리고 그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마음에 안 든다’라고 말한다. 구약에 따르면, 영원히, 욕구불만에 시달린다.    

 

신약은 ‘비움의 순간’을 이야기한다. 행복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다고 한다. 지금 여기에 있는 행복을 ‘발견’ 하기 위해, ‘깨어서 의식적으로 지켜보라(keep watch)’고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않고, 모든 상황에 감사하며,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라고 말한다. 신약에 따르면, 영원히, 행복에 머문다.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 줄 아니
? 
무계획이야, 무계획. No plan. 
왜냐, 계획을 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되거든, 인생이.”
<영화 기생충中 >

구약은 삶을 가정법(If)으로 바라본다. ‘만약~이 충족되면’, 비로소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사랑과 행복도, 조건이 충족되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구약에 따르면, 형식과 절차는 복잡해지고, 행동은 굼떠지며, 사고는 경직된다. 

 

신약은 역사에 가정법이 있을 수 없듯이, 삶에도 가정법이 있을 수 없다고 한다. 그냥 한다(Just Do it). 사랑과 행복에도, 조건이 없다고 한다. 신약에 따르면, 형식과 절차는 간소 해지고, 행동은 주저함이 없으며, 사고는 유연해진다. 

도는 언제나 억지로 일을 하지 않지만,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다.
-노자

구약은 세상이 불안하니, 마음 놓지 말라고 한다. 

 

신약은 마음 놓아 버리면, 평안하다고 한다. 불안하기 때문에, 마음을 놓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놓지 않고 꽉 쥐고 있기 때문에, 불안해지는 것이다. 힘(Force)을 빼면, 진정한 힘(Power)과 하나 된다. 이것을 ‘힘에의 의지(Will to Power)’라고 한다.

군자는
마음의 평정을 얻어 여유가 있고
, 
소인은
늘 걱정스러워한다.

-공자

구약은 머리를 써서 ‘거래’하라고 한다. 머리는 ‘계산’ 한다. 계산하는 자는, 더 받으려고 한다. 구약은 거래관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정도로, ‘높아져라!’고 한다.  

 

신약은 가슴을 써서 ‘사랑’하라고 한다. 가슴은 ‘신뢰’한다.  신뢰하는 자는, 더 주려고 한다. 신약은 사랑을 줄 수 있을 정도로, ‘깊어져라!’고 한다.

군자는
오직 의
()를 추구하고, 
소인은
오직 이익을 추구한다
.
-공자

구약은 끊임없이, 마음대로 ‘생각’한다. 끊임없이, 외부의 ‘사람, 사물, 사건’을 ‘판단’한다. 파편화된 에고의 ‘고정된 관념(완악한 마음)’으로, ‘선과 악’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다름’을 정죄한다. 서로 자기가 ‘선’인 파편화된 에고들끼리, 내로남불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 

 

신약은 ‘태풍의 눈’ 자리에 머무르며, ‘의식’한다.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근원에 접속하기 위해, 외부의 ‘사람, 사물, 사건’에 대한, ‘판단을 중지’하고, ‘관찰’한다. ‘매 순간’(↔고정된 관념), 자기 내면의 양심에서 올라오는 시비지심(是非之心, 옳음과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을 통해, 자명함과 찜찜함을 구별한다.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자유롭게 먹되
,
선악에 대한 지식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6~17>

구약은 ‘세상의 기준’을 따르라고 한다. 세상의 기준을 따르게 되면, 죽는 순간 까지, 시간에 쫓기게 된다. 세상의 기준을 따르는 사람은, 끊임없이 ‘빨리, 빨리!’라고 말한다.

 

신약은 ‘나의 흥미’를 따르라고 한다. ‘Interest(관심, 호기심, 흥미)’에서, 라틴어의 접두어 ‘inter’는 ‘안에’를 의미하고, ‘-est’는 ‘형용사, 부사의 최상급 어미’이다. 즉, ‘Inter+est’는, 나의 존재 ‘가장 깊은 곳’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게 끌리는, ‘나의 흥미’를 따르게 되면, 최상의 것들을 끌어당길 수 있다. ‘나의 흥미’를 따르면, 시간이 멈춘다. 흥미로운 일에 완전히 몰입했을 때, 시간이 멈춘 느낌을 누구나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영원한,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고 있는, ‘참나’와 하나 된 느낌이다. ‘참나의 흥미’를 따르는 사람은, 말없이 여유롭다.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성스러운 긍정이 필요하다. 
정신은 이제
자기 자신의 의지를 원하고
, 
세계를 상실한 자는 이제 
자신의 세계를 되찾는다
.
-니체

구약은 ‘너의 특기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구약은 겉에 드러난 껍데기만 볼 수 있다.

 

신약은 ‘너의 특이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신약은 드러나 있지 않은 본질을 통찰한다. 별거 없어 보이는 소소한 특이점 속에, 별-것이 있다.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 
일하는 근거를 보고, 
이유를 살펴보며, 
무엇에 마음이 빠지는지
세밀하게 들여다보라
. 
사람이 어찌 자신을 숨길 수 있겠는가?
-공자

구약은 외부의 눈으로 본다. 외부의 눈에는 화려한 것들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들은 무상한 것들이다. 무상한 것들을 부단히 축적해 봤자,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인간의 의지로 쌓아 올리는 바벨탑은, 반드시 무너진다.

Memento mori :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잊지 마라

신약은 내면의 눈으로 본다. 내면의 눈에는 소소한 것들이 보인다. 소소해 보이지만, 확실히, 지금 여기서 행동할 수 있는 것들이다. 지금 여기서, 나의 손에 잡히는 그 소소한 것들 속에, 영원한 ‘빛’이 숨어 있다. 진실로 모든 답은 내 안에 숨어있다. 영원한 것과 하나 되어 사느냐, 무상한 것과 하나 되어 죽느냐, 이것은 문젯거리도 아니다. 참나의 시작은 소소하겠으나, 참나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자기를 아는 것이 밝음()이다. 
소소한 것을 보는 것이 밝음()이다. 
()을 사용하되, 
밝음()으로 되돌아가면, 
자신에게 어떠한 재앙도
남지 않을 것이니
, 
이것을 
영원을 배워 익힘(襲常)’이라 한다. 
-노자

나의 사랑과 희망을 걸고  
그대에게 간절히 바라노니
그대 영혼 속의 영웅을 버리지 마라!  
그대의 최고의 희망을
신성하게 간직하라
!
-니체

구하는 자는

찾을 때까지 구함을 멈추지 말라

그가 찾게 될 때 불안하게 될 것이요

그 불안은 놀라움으로 바뀔 것이며  

마침내 그는 모든 것을 지배하리라.

-예수(도마복음 2절)


천국은 너희 안에도 있고

너희 바깥에도 있느니라.

-예수(도마복음 3절)

외부적 실재 
내부적 실재와 분리될 수 없다
.
-디팩 초프라


지금까지 살펴본 예수의 ‘의식 혁명’을 도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세로축: “주 너의 하나님(I am, 참나)을 사랑하라.”=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22:37~39)
가로축: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태복음 26:38)

우리가 하나가 될 때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합시다
. 
우리는 세계이며, 
우리는 아이들입니다.
<
마이클 잭슨- We are the World>

 

Now
I, and I, and I, and I are I-LAND

너와 난, 너와 난, 너와 난
하나인 거야
<IU(아이유)-Into the I-LAND>
Into the I-LAND (Into the I-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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