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그 누구도 나를 닮을 순 없네.
날 세상에 알릴 거야.
나 역시 그 누구를 따라 하진 않겠어.
나의 유일함을 위해.
내세워요. 신께서 주신 당신을.
과감하게 모든걸 부숴버려요.
실패해요. 쓰러지세요. 당신은 일어설 수가 있으니.
다음에야 쓰러져있던 널 볼 수 있어요.
-서태지와 아이들. 수시아(誰是我, Who am I)
신명
:흥겨운 멋이나 기분.
:신의 명령.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으리 만큼 조심스럽게 산다면 모를까,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 삶은 없다. 그리고 그런 삶 같지 않은 삶은 그 자체가 실패다.
-J.K. 롤링
하고 싶은 것을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이것이 유일한 성공 비결이다.
-말콤 포브스
공자의 철학은 극기복례를 강조한다. ‘지금 여기’ 있는 자기가 극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사람들은 참 열심히 산다. 자기극복은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정신 덕분에 한국은 최빈국에서 산업화를 성공시킨 유일한 국가가 되었다.
홉스테드의 국가 문화연구에서 ‘유교적 역동성’은 ‘장기 지향성’이라고도 불린다. ‘자기극복 패러다임’은 현재의 행복을,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미룬다. 한국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나중에 커서 뭐가 되기 위하여’ ‘지금 여기’의 행복을 포기하는 방법을 학습한다. 문제는 그렇게 어른들의 말을 잘 듣고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며 살아도 행복은 계속 ‘나중 저기에’있다는 것이다. 취업을 위해, 결혼을 위해, 내집마련을 위해, 자식교육을 위해, 노후대비를 위해 ‘지금 여기’의 자기는 계속해서 극복당한다.
‘자기 극복 패러다임’은 학습, 배움, 채움을 강조한다. 한국사람들은 공부를 많이 한다. 문제는 맹목성에 있다. 배우는 것이 창조와 자기실현의 수단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이 된다. 보편적 기준은 답이 된다. 정답과 오답의 이분법 속에서 질문과 비판은 수용되지 못한다. 생각하는 힘이 약해진다. 창조하는 힘이 약해진다. 자기를 실현하는 욕구가 약해진다.
어린아이 때는 모두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자기의 진짜 욕구, 감정, 행복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어른스러워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러한 내면의 목소리는 억눌린다. 끊임없이 외부의 기준을 채워 나가기 때문이다. 외부의 보편적 기준을 채우고 또 채워 평준화된 인간이 된다. 모두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였던 개개인은 동질의 상품으로 전락한다.
‘자기 극복 패러다임’은 내부의 ‘진정한 자기’를 억누르게 하고, 외부 기준에 의해 형성된 편협한 '에고'를 키운다. 끊임없이 채우고, 비교하고, 경쟁하고, 자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게 하는 것은 진정한 자기의 목소리가 아니라 외부에 의해 학습된 ‘에고라는 환상’이다. 겁먹고 두려워서 ‘지금 여기’의 행복을 ‘나중 저기’로 미루게 하는 생각,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리를 무겁게 만드는 그 끊임없는 생각들 역시 외부에 의해 강요된 에고에 의한 것이다. 에고라는 환상은 먹구름과 같아서 진정한 자기를 가려 버린다. 내면의 목소리를 못 듣게 만든다. 진짜 자기의 욕구가 무엇인지를 망각하게 만든다. 성적, 학벌, 돈, 명예 등의 결핍 욕구를 주입하고 세뇌한다. 에고라는 환상을 자기인 줄 착각하면 고통이 시작된다. '자기기만'이 시작되어 욕구불만에 시달리게 되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이 그대에게 유일한 순간이며
바로 여기가 단지 그대에게 유일한 장소이다.
환상 속에 그대가 있다.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환상 속에 아직 그대가 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다.
-서태지와 아이들. 환상 속의 그대
에고에 당하느냐
에고를 통제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라이언 홀리데이. 에고라는 적
쳇바퀴 돌리기 경주(rat race생존 경쟁)에서의
핵심은, 이기나 지나 변함없이
당신이 쥐라는 사실이다.
-릴리 톰린
사람들은 운명의 감방이 아닌
자신의 마음이라는 감방에 갇힌 죄수들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공자의 ‘자기 극복 패러다임’ 반대편에는 노자의 ‘자기실현 패러다임’이 있다. 공자가 채우라고 했다면, 노자는 비우라고 한다. 에고는 자존감이 낮고, 자의식은 과잉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에서 무엇인가를 채우는 것을 통해 공허함을 메우려고 한다. 에고가 강해질수록 외부로부터 무엇인가를 채우는 것과, 그것을 다시 외부에 확인받는 것에 중독된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에고를 비워내야 진정한 자기가 등장할 수 있다. 비워내야 외부조건에 의해 형성된 에고가 아닌, 존재 자체로 완전한 진정한 자기로 살아갈 수 있다. 가짜 자기인 에고가 몰락하고 죽어야 진짜 자기가 살아난다.
텅 비어 있구나! 마치 계곡과 같다.
(…)
배움을 행하면 날마다 보태지고,
도를 행하면 날마다 덜어진다.
덜고 또 덜어내면
무위의 지경에 이르는구나..
무위를 행하면 되지 않은 일이 없다.
(…)
이런 이치를 지키는 자는 꽉 채우려 들지 않는다.
채우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너덜너덜하게 하지 특정한 모습으로 완성하지 않는다.
-도덕경 中
배움을 끊으면 근심이 없어진다.
-도덕경 中
공자가 학습을 통해 이상적인 인간으로 자신을 완성하라고 했다면, 노자는 배움을 끊으라고 한다. 여기서 배움은 맹목적인 배움을 의미한다. 외부의 이념, 사상, 이론을 받아들이지만 말고, 그것을 밟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서라는 말이다. 외부에서 내부로 채우기만 하지 말고, 자기 내부에 있는 것을 세상에 실현하라는 말이다. 배움은 진정한 자기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하기 때문에 무비판적으로 하는 공부는 끊어야 한다.
성인은 배를 위할 망정 눈을 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도덕경 中
노자는 ‘성인은 배를 위할 망정 눈을 위하지 않는다’고 한다. 배는 ‘지금 여기’ 자기 몸 안에 있다. 배는 자기 내면을 향하는 방향성을 의미한다. 반면 눈은 끊임없이 외부를 향하고 있다. 눈은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한다. 외부의 이상적인 ‘저것’만을 볼 수 있다. 눈은 외부를 향하는 방향성을 의미한다.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는 말은 ‘나중, 저기, 외부,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여기,내면,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외부의 보편적 기준이 아니라 자기 내부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에게만 들리는
이 속삭임에 귀 기울이지 않는 한
누구도 결코 탁월함을 성취할 수 없다.
-토마스 칼라일
내게 있어 품격 있는 인간의 소임과 의무는
자신의 잠재력을 성실하고 정직하게 계발하는 것이다.
-이소룡
이 세계는 시작이 있는데
그것이 이 세계의 어머니 같은 역할을 한다.
만일 이 세계의 진상에 대한 통찰을 얻으면
그것을 통해 현상 세계를 알 수 있다.
현상 세계를 알고 나서
다시 세계의 진상을 지키는 데로 돌아간다면,
죽을 때까지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세계와 통하는 구멍과 문을 모두 막고 폐쇄하면,
죽을 때까지 힘들지 않을 것이다.
세계와 통하는 구멍을 활짝 열고
복잡한 일거리를 늘린다면,
죽을 때까지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소소한 것을 볼 줄 아는 것을 명明이라 하고
부드러움을 잘 지키는 것을 강强이라 한다.
그 지혜의 빛을 사용하되 명으로 귀결되면
자신에게 어떠한 재앙도 남지 않는데,
이것이 바로 '영원한 것과 조화된다(襲常)'는 것이다.
-도덕경 쉰두째 장
<요약>
-
에고는 자기 극복의 길을 간다
-
에고는 외부조건에 의해 형성된 환상이지 진정한 내가 아니다.
-
진정한 자기는 자기실현의 길을 간다.
-
외부에 의해 강요된 에고를 비워내야 진정한 자기가 드러난다.
-
진정한 자기가 드러나는 것이 아이로 돌아가는 것이다.
'✒️골방인디출판 > 노자 컨설팅-포스트꼰대니즘의 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자 컨설팅-제11장 결 : 유무상생(有無相生) (1) | 2020.05.09 |
---|---|
노자 컨설팅-제9장 I am Happy (1) | 2020.05.05 |
노자 컨설팅-제8장 아이&아이(I and I) (4) | 2020.05.04 |
노자 컨설팅-제7장 아이들 (8) | 2020.05.03 |
노자 컨설팅-제6장 무위자연(無爲自然) (1) | 2020.05.02 |
댓글